한국인의 자연저장소
한식에는 기다림의 아름다움, 느림의 과학이 담겨 있다. 자연의 시간표에 따라 자연에 존재하는 미생물을 이용하여 식품의 맛과 영양을 높이고 유산균 등 유용성분을 생성시키는 ‘발효’가 그것이다.

 

자연발효의 산실, 독
한식을 대표하는 김치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한국음식에 콩을 발효시킨 양념인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이 첨가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술, 젓갈, 장아찌 등의 음식이 발효과정을 거친다. 한식을 이야기할 때 발효를 빼놓을 수 없고 발효라고 하면 ‘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이란 찰흙으로 모양을 만든 뒤 잿물(자연유약)을 바르고 가마에서 구워내 만든 용기다. 옹기, 오지그릇, 항아리 등으로도 불리는 독에는 미세한 구멍이 있어 이 구멍을 통해 공기가 통과하여 발효가 일어난다. 공기는 통하되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아주니 음식이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옹기를 ‘숨 쉬는 그릇’이라 한다.

한국 여인의 자부심, 장맛
예로부터 한국의 여인들은 장맛을 좋게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장독뚜껑을 열어 햇빛을 보게 했고 독을 잘 닦아주어 공기구멍이 막히지 않게 신경을 썼다. 예나 지금이나 잘 발효된 장맛은 한국 여인의 큰 자부심이며 ‘장이 단 집에 복이 많다’는 속담이 전해내려 온다.

한식의 근원, 발효

자연에서 배운 식품과학, 발효. 발효음식은 한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 중 전통양념인 장 만드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① 가을에 수확하는 노란빛의 콩, 백태를 준비해 겨울에 메주를 만듭니다. 콩은 빛깔이 고르고 벌레 먹거나 썩지 않은 것을 골라서 씻고 물에 10시간 정도 담가 불립니다.

② 불린 콩을 솥에서 2시간정도 푹 삶습니다. 덜 익으면 비린내가 나고 발효가 잘 이루어지지 않지요. 손으로 콩을 비볐을 때 쉽게 뭉그러져야 합니다.

③ 삶은 콩의 물기를 뺀 뒤 절구통에 넣어 찧습니다.쪼개진 콩 알갱이가 드문드문 보이는 상태가 좋은 것이죠.

④ 틀에 넣거나 손으로 빚어 메주모양을 만듭니다. 메주 모양은 지방과 가정에 따라 다릅니다. 나무틀을 이용할 경우, 틀에 면 보자기를 깔고 찧은 콩을 넣은 뒤 보자기를 잘 여며 꼭꼭 눌러서 일정한 모양을 만듭니다.

⑤ 30℃정도의 방안에 짚을 깔고 2주정도 두면 메주가 마르고 표면에 곰팡이가 덮입니다. 이때 가끔 밖에서 말려 잡균의 번식을 막아줍니다. 겉이 노르스름하고 붉은 빛을 띠면 볏짚으로 묶어 겨우내 방안에 매달아 말립니다.

⑥ 이른 봄, 메주를 꺼내 물로 씻어서 햇볕에 바짝 말린 뒤 항아리에 차곡 차곡 담은다음, 물과 소금의 비율을 1:1로 맞춘 소금물을 부어요. 메주가 물 위로 1㎝쯤 떠오르면 알맞습니다.

⑦ 구운 대추와 붉은 건고추, 달군 숯을 띄우고 웃소금을 약간 뿌린 다음 뚜껑을 덮어 익힙니다. 이때 항아리 입구에 볏짚을 두르고 그 사이에 붉은 건고추와 숯을 끼우는데 나쁜 기운을 막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⑧ 60일 정도 지난 뒤 메주를 건져내고 남은 물을 고운체에 밭쳐 따라 놓습니다. 건져낸 메주를 항아리에 담고 소금을 덮어 익히면 된장이 되죠. 밭쳐 둔 물을 끓여 숙성시킨 것이 간장입니다.

⑨ 담근 장은 50일쯤 뒤부터 숙성되죠. 미세한 구멍이 있어 ‘숨 쉬는 그릇’이라고 불리는 옹기 항아리는 발효가 잘 일어납니다. 한국의 여인들은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좋은 곳에 장독대를 마련해 두고 매일 항아리를 닦고 뚜껑을 열어 햇볕을 쐬게 하는 등 정성껏 관리해왔습니다.

⑩ 콩으로 만든 메주는 된장, 간장, 고추장 등 한식의 기본양념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메주는 물론, 장을 만드는데는 긴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장맛이 단 집에 복이 많다’고 하여 장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글 박현숙 작가 | 사진 이종근 | 일러스트 홍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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