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맛, 멋, 철학의 결정체

5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한국은 고대로부터 근대 초까지 왕권중심의 문화를 꽃피웠다. 그중 조선시대는 14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500년간 이어졌으며 왕가에서는 품격 있고 다채로운 음식문화를 이루었다. 조선왕조의 음식문화는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한식 고유의 맛과 멋, 철학을 담은 한국음식문화의 정수로서 나라의 중요무형문화재로 자리매김했다.

° 음식에 우주를 담다

한국의 궁중음식에는 한국인의 자연철학인 음양오행(陰陽五行)이 담겨있다. 곧 차고 어두운 에너지와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가 공존하면서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우주처럼 하나의 상에 음양오행의 음식을 조화롭게 모두 담아내는 것이다. 차가운 김치가 있는가 하면 따끈한 국이 있고 고기와 채소, 산과 바다의 산물이 고르게 있으며, 흙(土)에 해당하는 노란색, 쇠(金)에 해당하는 흰색, 물(水)에 해당하는 검은색의 오방색 음식이 골고루 차려진다. 오늘날 영양의 균형을 위해 중요시 되는 컬러 푸드 상차림과 일맥상통한다.

° 치유의 음식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은 한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음식은 약과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原)’ 사상의 출발점이다. 한국 궁중음식을 다루며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대표적인 K-Drama <대장금>에서는 궁중음식의 약식동원 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 대장금은 항상 사람의 몸에 이로운 음식,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음식을 추구한다. 예컨대 장금은 조선을 방문한 중국 대사가 당뇨병인 것을 알고 기름진 음식이 아닌 채식음식을 차려낸다.

° 흐트러짐 없는 격식과 법도의 상차림

궁중음식은 크게 평소에 차리는 일상식(日常食), 외국 손님을 맞이할 때 차리는 영접식(迎接食), 제례를 올릴 때 차리는 제례식(祭禮食), 왕가의 혼인식이나 책봉식 등에 차리는 가례식(嘉禮食), 경축일에 차리는 연향식(宴享食) 등으로 나뉘며 엄격한 격식과 법도를 중시했다. 영접식, 연향식, 가례식 등과 같은 궁중의 잔칫날에는 화려한 상차림이 선보였다. 궁중 연회에서 왕과 왕족에게는 다리가 높은 상을 여러 개 이어 30~40여 가지에 달하는 음식을 차렸다. 또한, 음식을 쌓아올려 왕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했는데 30~50cm에 이르는 높이였다. 왕이 평소 아침, 저녁으로 받았던 상을 수라상이라 한다. 수라상에는 12개의 찬이 오르는데 이는 오직 왕가의 상차림에만 허락되었다.

° 올림과 내림의 음식문화

조선시대 왕에게는 전국의 특산품과 계절에 처음으로 나온 식품이 진상되었다. 여주와 이천의 쌀, 순창의 고추장, 완도의 전복, 제주의 귤, 인제의 벌꿀, 서산의 굴, 상주의 곶감, 영덕과 울진의 대게 등이 왕에게 올려졌다. 12첩 수라상은 왕이 백성의 삶을 살피는 바로미터이기도 했다. 상에 오른 식재료를 통해 흉년, 풍년, 백성의 살림살이를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올림의 문화와 함께 내림의 문화가 있었다. 왕은 궁중의 연회 때 풍성하게 장만한 음식을 신하에게 골고루 나눠주었으며 한여름에는 서빙고의 얼음도 하사했다. 또한, 왕이 수라상을 물리면 제일 위의 상궁부터 밥을 새로 지어서 반찬을 물려주면서 더 보태서 먹었다.

° 최고의 맛과 멋을 살리다

궁중음식 전문 요리사들은 음식을 만들 때 왕의 바른 정치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양이 바르지 않은 채소나 생선은 쓰지 않는다. 반듯한 모양을 가진 식재료와 가장 맛있는 부분만 골라 최고의 맛과 멋을 낸다. 궁중음식에서는 강한 향신료는 사용하지 않고, 짠 반찬이나 매운 찬, 냄새가 많이 나는 찬 등 자극적인 맛을 피해 식재료 본연의 담담한 맛이 나도록 조리한다.

평등의 메시지를 담은

탕평채

청포묵, 쇠고기, 녹두싹, 미나리 등을 간장양념으로 고루 버무린 후 다양한 고명을 얹어낸 음식이다. 조선왕조 제 21대 왕인 영조가 각 붕당의 인재를 고루 평등하게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고 탕평책의 경륜을 펼치는 자리에서 등장한 음식이 바로 탕평채이다. 각양각색의 재료가 들어가 조화로운 맛을 내는 탕평채는 탕평책을 상징한 음식이었다.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구절판

마치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다운 음식으로 맛도 좋다. 구절판이란 9개의 분리된 그릇이란 뜻도 있는데 둘레의 여덟 칸에 각각 여덟 가지 음식을 담고, 가운데 둥근 칸에는 밀전병을 담아 낸 것이다. 둘레의 음식을 골고루 조금씩 집어 밀전병에 싸서 먹는다. 한데 어우러진 9가지 맛이 풍부하다.

장수를 꿈꾸며 먹는

대하찜

대하를 물에 살짝 데쳐 쇠고기 양념한 것을 끼운 후에 표고버섯, 석이버섯, 황백지단 채친 것, 실고추 등을 고명으로 얹어 쪄낸 음식이다. 한국에서 새우는 해로(海老) 곧 ‘바다의 노인’이라고 하여 장수를 상징하며 길한 징조를 나타내기도 한다.

쇠고기의 부드러운 풍미가 일품인

너비아니

궁중식 불고기이다. 쇠고기의 안심이나 등심 부위를 잘 다져 간장, 파, 마늘, 생강즙 등으로 양념하고 배즙을 넣어 20분정도 재워두어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풍미를 더해준 다음 넓적하게 구워낸다. 어린이나 노인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맛이 좋다.

깊고 부드러운 우유 보양식

타락죽

곱게 간 쌀가루를 우유와 섞어 끓여 만든 매우 부드러운 죽이다. 이즈음은 우유가 흔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우유가 귀한 식재료였으며 왕의 전담의사가 날씨가 추워지면 왕의 건강을 위해 타락죽을 처방했다.

신선이 즐기는

신선로

‘신선이 즐기는 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입이 즐거운 전골’이라는 뜻의 ‘열구자탕’이라고도 불린다. 가운데 화통이 있어 숯을 넣을 수 있는 탕기에 쇠고기와 갖은 해물, 색색의 채소를 돌려 담고 육수를 부어 즉석에서 끓여 먹는다. 들어가는 재료만 25가지이고 만드는 시간도 오래 걸리는 귀한 음식이다.

궁중음식을 배울 수 있는 궁중음식연구원

한국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전문 연구원이다. 조선왕조 주방상궁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 곳으로서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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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현숙 작가 | 사진 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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