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여름, 혹은 이른 가을의 그 어딘가

 

끔찍한 여름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유쾌하거나 즐겁거나 들뜨게 만드는 소식이 없는 여름이었다. 그래서 어서 지나기만 바라는 사람이 많았던 여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름이 지나고 있다. 미련이 남지 않을 계절, 다시 돌아보지 않을 시기였건만 그럼에도 막상 그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쉬움이 남는다. 여느 때의 여름처럼 마음껏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경주로 달려가자.

늦은 여름,
혹은 이른 가을의 그 어딘가

 

끔찍한 여름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유쾌하거나 즐겁거나 들뜨게 만드는 소식이 없는 여름이었다. 그래서 어서 지나기만 바라는 사람이 많았던 여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름이 지나고 있다. 미련이 남지 않을 계절, 다시 돌아보지 않을 시기였건만 그럼에도 막상 그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쉬움이 남는다. 여느 때의 여름처럼 마음껏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경주로 달려가자.

동해에서 가장 신비로운 공간

만약 당신이 부지런한 여행자라면, 여행에서는 뭔가 특별한 것을 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남들보다 아침잠이 적은 사람이라면 새벽의 감은사지를 첫 목적지로 잡는 게 좋다. 지금은 그 터만 남은 감은사는, 문무대왕이 직접 창건을 명했던 곳. 사후 용이 된 자신의 안식처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삼국유사』에도 “금당 돌계단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을 하나 뚫어두었으니, 곧 용이 절로 들어와 돌아다니게 하려고 마련한 것이다.”라는 대목이 적혀 있다.

지금은 논밭에 둘러싸여 있지만, 절을 창건했을 당시에는 바닷물이 금당 아래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2007년 토양 분석을 통해 밝혀낸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문무대왕릉에 조성한 인공 수로는, 문무대왕이 감은사까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만든 통로였던 셈. 그리고 그 흔적을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고고하게 지키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흥준 교수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문화재로 꼽는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희뿌연 안개가 어려 있는 새벽에 마주하면 그 이상 신비로울 수가 없는 존재들. 그래서 유흥준 교수 역시 「편집자가 조건 없이 허락해준다면 감은사에 대한 답사기를 원고지 처음부터 끝까지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이렇게 쓰고 싶다.」고 표현할 정도다.
그러니 당신이 조금은 게으른 여행자라도, 여행이 다 그렇지 뭐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남들보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도 새벽의 감은사지를 꼭 한 번 방문하길 바란다. 경주의 바다가 왜 다른 동해안과 다른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를 깨닫게 되는 곳이니까.

흘러내린 바위의 흔적을 찾아서

「마그마나 용암이 단단하게 굳을 때에는 수축이 일어나므로 그 중에 틈이 생기게 된다. 신선한 암석에서는 이들 틈이 잘 보이지 않으나 풍화를 받으면 틈에 따라 풍화가 먼저 진행되므로 오랜 시일이 지나면 굵은 틈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틈을 절리라고 한다.」 절리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위와 같다. 그리고 주상절리는 이와 같은 절리가 기둥모양(柱狀)으로 형성된 것을 이른다. 화산암의 암맥이나 용암, 용결 응회암 등에서 생기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화산섬인 제주 중문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그리고 경주에도 바로 이 주상절리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더군다나 위로 솟아 있는 일반적인 모습도 아니다.

보통의 주상절리가 수직 혹은 수직으로부터 조금 기울어진 모습을 보이는 반면, 약 2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경주의 주상절리는 수평방향으로 발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부채꼴 형태도 발견되고 있다. 물론 일반적인 형태의 주상절리도 관찰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경주의 주상절리는 한층 더 각별하다. 서로 다른 모습의 주상절리가 한 곳 모여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주상절리는 심미적 가치 뿐 아니라 동해안 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는 게 학계의 설명.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바닷가를 걸어가는 이들에게는 흔히 만날 수 없는 희귀한 볼거리로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겠지만, 조금만 더 깊이 바라보면 그 안에 응축된 뜨거운 시간이 초여름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신비한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읍천항을 목적지로 설정하면 된다.

아직, 여름이 있는 바다

바다는 계절에 상관없이 사람을 부른다. 햇살이 뜨거울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여전히 물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그곳에 있다. 하지만 이제 파도가 거칠어질 때가 됐다. 물론 바닷물도 차가워졌다. 자연 그렇게 절기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니 사람들과 간격을 멀찍하게 유지하며 검푸른 바다를 보는 게 좋겠다. 시선을 한 곳에만 고정시키는 게 답답하다면, 당연히 드라이브가 좋은 선택.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빠르지 않은 속도로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일은, 출퇴근의 그것과 전혀 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다만 코스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도록 하자. 중앙선을 사이에 둔, 차선 하나 차이라고는 하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꽤 다르니까.

그렇게 달리는 길에서는 큰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파도와 만날 때가 있다. 하얀 포말이 크게 소리치는 모습을 만나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잠시 이동을 멈추고 바다 가까이 가보자.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바다가, 어쩌면 이 힘들었던 여름을 견뎌낸 당신을 위로할지도 모르니까.

동해를 닮은 한 그릇, 물회

사실 물회는 맛을 미세하게 구분하기 힘든 음식. 개성이 강하지 않은 회를, 매운맛을 기본으로 하는 얼음 육수에 담가 먹으니 이러저러한 맛에 대해 평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아삭한 채소들과, 낮은 온도 덕분에 씹는 맛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물회의 가치를 증명한다. 특히 바다 위의 돌고래횟집의 물회는 각별하다. 워낙에 풍경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2층은 대규모 단체 손님들, 3층은 소규모 개별 손님들을 위한 공간. 층수에 관계 없이 창가에 앉으면 검푸른 경주의 동해가 아득하게 보인다. 물회와 함께 나오는 매운탕도, 차가운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

앞서 물회의 맛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썼지만, 맛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곳의 음식은 누가 먹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감을 보장한다. 식사 시간이면 상당히 북적거리지만, 일부러 시간을 조절해 찾아가면 눈과 입으로 동시에 동해를 맛볼 수 있다.

바다 위의 돌고래횟집

경북 경주시 감포읍 동해안로 1888-10
054-744-3507

동해를 닮은 한 그릇, 물회

사실 물회는 맛을 미세하게 구분하기 힘든 음식. 개성이 강하지 않은 회를, 매운맛을 기본으로 하는 얼음 육수에 담가 먹으니 이러저러한 맛에 대해 평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아삭한 채소들과, 낮은 온도 덕분에 씹는 맛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물회의 가치를 증명한다.

특히 바다 위의 돌고래횟집의 물회는 각별하다. 워낙에 풍경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2층은 대규모 단체 손님들, 3층은 소규모 개별 손님들을 위한 공간. 층수에 관계 없이 창가에 앉으면 검푸른 경주의 동해가 아득하게 보인다. 물회와 함께 나오는 매운탕도, 차가운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

앞서 물회의 맛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썼지만, 맛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곳의 음식은 누가 먹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감을 보장한다. 식사 시간이면 상당히 북적거리지만, 일부러 시간을 조절해 찾아가면 눈과 입으로 동시에 동해를 맛볼 수 있다.

바다 위의 돌고래횟집

경북 경주시 감포읍 동해안로 1888-10
054-744-3507

글ㆍ사진 정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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